2022.09.12 (월)

영화「항거 : 유관순 이야기」를 보다!

일제의 고문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, 우리의 유관순 열사 이야기

 곧 다가오는 8월 15일은 '광복절'이다.

광복절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제점령기로부터 독립한 날이다. 일제강점기 시절, 많은 사람들이 독립운동을 했다. 그 중, 우리가 잘 알고 있는 '유관순 열사'도 있다.

 

 최근, 필자는 유관순 열사에 관한 영화, 「항거 : 유관순 이야기」를 보았다. 이 영화는 유관순 열사가 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을 때부터 죽을 때 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. 

 

 

 1919년, 17세의 유관순 열사는 비폭력 만세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, 서대문 형무소에 들어간다. 그 곳은, 세 평 남짓한 방에 30명이 넘는 여수인들이 있었다. 그녀들은 다리가 붓는 것을 막기 위해 방을 돌아야 했고, 자거나 앉는 것도 번갈아 해야만 했다. 또 단벌 옷으로, 사계절을 버텨야 했다.

 그녀들은 방을 돌면서, 아리랑, 애국가 등의 조선 노래를 불렀는데, 간수가 오면 노래를 그쳤다. 이를 본 유관순 열사는 "이런 우리가 참 개구리 같다!"라며, 다른 사람들을 독려해, 간수가 와도 노래를 그치지 않았다. 또 "우린 개구리가 아니다!"라고 외쳤다.

 1920년 3.1절, 유관순 열사와 여수인들은 형무소 안에서 만세를 외쳤다. 만세 소리는 다른 방에까지 퍼졌고, 형무소의 모든 수용자들이 만세를 외쳤다. 그 만세 소리는 형무소를 넘어, 거리로 퍼져 나갔다. 

 하지만, 간수는 이 만세의 시작이 유관순 열사가 있는 방임을 알아냈고, 앞에서 진행하던 유 열사를 끌고가 모진 고문을 했다. 손톱 찌르개, 벽장고문  등 말로 할 수 없는 모진 고문을 받고, 묶인채로 독방에도 가게된다. 어느 날, 형기의 반 이상을 지낸 수용자들이 풀려나고, 30명이 넘었던 방에는 유 열사 혼자만 남게 되었다. 결국, 유 열사는 수용실에서 혼자 외롭게 죽어간다.

 

 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의 사람들을 너무나도 끔찍하게 대했다. 하지만 우리나라는 끝까지 저항했고, 독립을 했다. 유관순 열사 외에도 우리나라의 독립을 위해 싸웠던 '이름없는 유관순'들이 많다. 이 분들이 없었다면, 지금의 우리는 없었을 것이다. 우리는 우리나라를 위해 싸웠던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.